약방의 감초, 디지털 서비스의 이것

근 10년 동안 유난히 인기가 급증한 단어가 있습니다. 컨텐츠를 만드는 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다양한 3D 툴을 사용하여 **'이것'**을 잘 만드는 사람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잘 만들어진 **'이것'**을 가지고 나선 사람들은 얼굴 한 번 안 비치고도 재능을 만개하며, 서비스들은 유저에게 **'이것'**을 꾸미고 내세울 기회를 제공해주지 않으면 자유도가 없다며 평점이 가차 없이 깎여나갑니다. 모델링, 버튜버, 커스터마이징. 이 모든 것들과 관련된 말이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의 또 다른 나, 아바타. 오늘 저희는 아바타 개념의 역사를 읽어 현재를 해석하고, 앞으로 XR이 아바타를 어떻게 완성시킬 수 있을지 알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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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에서 아바타가 되는 길

이원록-이육사 / 헤르만 헤세 / 말콤 리틀-말콤 X

이원록-이육사 / 헤르만 헤세 / 말콤 리틀-말콤 X

아바타의 실제 사례들을 찾아보면, 대부분 어떠한 인물이 또_다른_나another_me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또_다른_나들이 아바타인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또_다른_나 개념에서 아바타가 아닌 것들을 소거하면, 아바타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할 수 있겠죠?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또_다른_나를 생각해보면, '실제 사람이 본명이 아닌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필명, 별명, 가명이 바로 이러한 사례인데요, 사례로 보자면 이원록은 죄수 번호에서 음을 얻고 항일의 뜻을 담아 이육사라는 필명으로 활동했고, 헤르만 헤세는 시대의 명작 [데미안]을 주인공 싱클레어의 이름을 빌어 출판했습니다.

단순한 가명 또는 별명이라면 더욱 그 사례가 많습니다. 카르다노에게 3차 방정식의 해를 빼앗긴 수학자로 유명한 타르탈리아, 그의 본명은 니콜로 폰타나입니다. 리틀이라는 백인 스타일의 라스트 네임 대신, 이제는 알 수 없는 아프리카 어딘가에 있을 본인 조상의 성을 의미하고자 한 말콤 X도 있죠. 현대적인 사례를 찾아보자면 예명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연예인들도 전부 그에 해당합니다.

다만 이들 중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아바타와 가까운 개념을 꼽자면 필명이나 활동명, 그 중에도 헤르만 헤세의 싱클레어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례들은 왜 소거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실제 존재의 의도와 양립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의 의도를 일부러 투영했다

타르탈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말을 더듬다’ 그 자체입니다. 즉, 한국식으로는 김어눌 정도 되는 것.

타르탈리아는 이탈리아어로 ‘말을 더듬다’ 그 자체입니다. 즉, 한국식으로는 김어눌 정도 되는 것.

먼저 ‘실제 존재가 또_다른_나를 의도하고 만들었는가?’를 고려했을 때, 타르탈리아와 같은 단순한 별명이 소거됩니다. 타르탈리아는 니콜로 폰타나가 말을 더듬는 습관을 보고 본이닝 아닌 타인들이 붙인 별명이므로, 당연히 본인의 의지로 만들어낸 또 다른 니콜라 폰타나가 아니니까요. 본인이 아바타라 생각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아바타라 할 수 있겠습니까. 비슷한 논리로, 여러분들은 대부분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들이 여럿 있으시겠지만, 웬만하면 여러분은 그 별명들을 아바타는 커녕 또_다른_나라 생각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즉, 본인이 본인임을 숨기거나 다른 방식으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가명, 예명,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 외에는 전부 후보에서 소거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끝일까요? 아직 필터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어떠한 실체가 아닌, 텍스트 또는 호칭으로서 존재하는 것들 역시 걸러집니다. 그들은 단지 말 그대로 그렇게 불리는called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데,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그 이유는 두 존재가 이 세상에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도를 담은 다른 존재

유재석의 ‘부캐’들은 각각 XOR의 관계 / 하나의 채팅창에서 양립불가능한 멀티 프로필 /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특집] 정준하

유재석의 ‘부캐’들은 각각 XOR의 관계 / 하나의 채팅창에서 양립불가능한 멀티 프로필 / [무한도전 명수는 12살 특집] 정준하

한동안 부캐 혁명이니 뭐니 하면서, 유명인들이 새로운 이름으로 등장해 본인들의 외연을 확장할 때마다 대박을 치던 시기는 꽤 지났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도 여전히 흥행 중인 부캐들은 있으며, 무명 예능인들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부캐를 파면서 본인의 이름보다 그 새로운 이름이 더 유명해지는 성공을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그들의 의도를 100% 반영하여 그들이 직접 만들어낸 부캐들은, 아바타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