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목차]

</aside>

들어가며

여러분은 살인을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우리는 뉴스나 드라마를 통해 살인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접합니다. 하지만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되어보는 일은, 대부분 현실과는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어쩌면 꿈 속에서조차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죠.

image.png

필자는 개인적으로 개미 한 마리도 쉽게 죽이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문득 상상으로나마 이런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만약 내가 살인을 하게 된다면, 혹은 가담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는 과연 **‘재현’**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가상현실 공간에서 살인을 간접적으로 나마 경험했을 때, 우리의 몸과 감정, 그리고 도덕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죄책감은 어디서 생겨나고, 우리는 무엇을 인지하게 될까요. 오늘은 살인과 죄책감, 그리고 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가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가상현실에서의 살인은 흔히 가볍게 소비되곤 합니다. 말 그대로 **‘가상’**이기 때문이죠. 게임만 봐도 사람을 해치는 콘텐츠는 넘쳐나고, 우리는 그것을 현실과 분리해 받아들이는 데 이미 익숙합니다. 실제 피해자가 없고, 언제든 헤드셋을 벗을 수 있으니 감정이나 도덕적 죄책감에서도 쉽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상현실을 연구 도구로 사용한 심리학 실험들은, 이 믿음이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image.png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멜 슬레이터 연구진이 진행한 밀그램 복종 실험의 가상 재현 연구입니다. 참가자들은 가상 공간에서 가상 학습자에게 단어 문제를 내고, 오답이 나올 때마다 전기충격의 강도를 한 단계씩 높여 버튼을 눌러야 했습니다. 이 과정은 총 32회 반복되었고, 충격이 누적될수록 가상 학습자는 점점 더 고통을 호소하며 실험 중단을 요구합니다.

실험은 두 조건으로 나뉘었습니다. 가시적 조건에서는 참가자가 실험 내내 가상 학습자를 직접 보며 상호작용했고, 표정·몸짓·고통 반응과 함께 “그만두고 싶다”는 직접적인 호소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비가시적 조건에서는 실험 초반을 제외하면 텍스트로만 반응을 확인했습니다. 두 조건 모두 학습자는 가상 캐릭터였으며, 차이는 오직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생생하게 지각했는가에 있었습니다.

image.png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가시적 조건에서는 23명 중 6명이 실험을 중도에 포기했지만, 비가시적 조건에서는 단 한 명도 실험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가시적 조건 참가자들은 심박수와 피부 전도도 등에서 더 높은 스트레스 반응을 보였고, 실험 말미에는 전기충격 버튼을 누르기까지 더 오래 망설였습니다. 이는 참가자들이 상황을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실제로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고 있다는 감각 속에서 행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결론은 단순합니다. 참가자들은 가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타인의 고통을 눈으로 보고 감정적으로 인식할수록 불안과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가상 환경에서도 가해 행동 자체는 가능했지만, 아무렇지 않게 해치지는 못했습니다.

도덕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될 때 무거워진다

밀그램의 VR 실험은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가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직접 보고 그 결과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감각에 놓이는 순간 불안과 책임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실험에는 분명한 한계도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선택의 주체라기보다는, 여전히 ‘지시를 따르는 사람’의 위치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버튼을 누르기는 했지만, 그 행위가 온전히 내가 내린 결정으로 기억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