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에 제일 큰 영향을 준 가장 작은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원하는 것을 골라보지도 못하는 우리가, 그보다 먼저 소리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꽤 신기하기도 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또는 헤드셋을 사용하고 있죠.
그런데, 여러분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잠시 이어폰을 뺀 적 있으신가요?

이어폰을 빼는 순간, 방금 전까지 차단되었던 주변 소리가 쏟아져 들어오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됩니다. “아, 내가 지금 이런 공간에 있었지.” 시야는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도, 내가 머무는 공간의 질감이 갑자기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 짧은 순간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바로 공간은 눈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통해 공간의 크기와 경계, 그리고 나와 환경 사이의 거리를 끊임없이 측정해 왔습니다. XR의 공간 오디오는 전혀 새로운 감각을 창조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우리 귀가 수행하던 이 정교한 계산을, 가상 공간에서도 끊김 없이 이어 붙이려는 노력입니다.
귀는 단순한 청음 기관이 아닙니다. 귀는 뇌와 함께 작동하며 공간을 해석하는 하나의 시스템을 이미 구축하고 있죠.
방문 너머에서 들리는 발소리 만으로도 그 사람과 나의 거리를 짐작하고, 문이 반 쯤 열려 있을 때와 닫혀 있을 때 음악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자동차 소리는 멀어지고 발걸음이 또렷해지며 공간이 좁아졌음을 느끼고, 지하철역 승강장에서는 울림 만으로도 천장이 높고 공간이 거대하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이 모든 판단은 시각 정보가 도착하기 전, 또는 도착함과 상관 없이, 오로지 청각적 단서만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뇌가 양 쪽 귀에 도달하는 소리의 시간차와 크기 차이, 머리와 귓바퀴에 의한 음색 변화, 그리고 벽과 천장에서 반사되어 돌아오는 잔향을 끊임없이 분석하기 때문입니다. 즉, 귀와 뇌의 공간 인식 시스템은 소리라는 파동의 정보를 통해 주변 공간을 재구성하는 과정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궁금한 지점이 하나 생깁니다. 만약 소리를 통해서 주변 공간을 재구성한다면, 그 소리가 정교하게 계획된 ‘가상 소리’일 때, 사람들은 ‘가상 공간’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걸까요?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뇌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동안 현실의 물리 법칙에 적응해 왔기에, 조금이라도 부자연스러운 청각 신호가 들어오면 즉시 그것을 알아챕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XR, 혹은 그보다 더 넓은 범위의 공간 음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뇌를 속이는 것이 목표가 된 것이죠.
따라서 XR 음향의 목표는 단순히 좋은 음질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뇌가 의심하지 않도록 현실의 소리 전달 과정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모사하는 데 있습니다. 이 정교한 눈속임을 위해 XR 엔진은 소리를 단순한 오디오 파일이 아닌, 3차원 공간 속의 데이터로 다루기 시작합니다.